최룡해가 탈북해야 하는 이유

2014-05-0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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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룡해가 최근 인민군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되고 대신 당(黨) 비서로 좌천된 것으로 전해진다.
선군(先軍)정치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북한에서 인민군은 소위 '최고지도자'의 독재와 안전을 보위하는 핵심 조직이며, 이 인민군을 사상적으로 감독하는 총정치국장은 사실상 2인자의 위치가 된다.
김정은은 최룡해를 해임하고 대신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출신으로 근래 인민군 차수 계급이 부여된 황병서를 신임 총정치국장으로 임명했다.
조직지도부는 '당 속의 당'이라 일컬어질 정도의 핵심 조직이다. 인사(人事)를 책임지는 곳이다. 김정은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총정치국장에 임명했다는 것은 최룡해의 군(軍) 운영 방식에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최룡해 실각' 등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숙청과 재기용은 북한에서 흔한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일성 시대 권력 제2인자였던 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증언이다.
故人은 어느 날 김정일의 인사 방식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최대한 이용해먹다가 필요 이상으로 힘이 커지면 숙청하고 대신 다른 사람을 기용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재기용해 이용한다"
김정일이 바로 김정은의 친부(親父)라는 점에서 이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점 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최룡해의 경우도 지나치게 권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좌천시킨 것일 뿐이다. 본시 독재자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권력을 타인과 나눠갖는 것'이다.

<김정은>
오히려 최룡해의 경우는 양반격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의 매제로서 2인자 또는 2인자에 준하는 권력을 가졌던 장성택은 2004년 분파행위를 이유로 아예 모든 공직을 박탈당했다. 이후 2년만에야 다시 복권될 수 있었다.
비록 총정치국장직은 물론 국방위 부위원장직까지 잃고 좌천됐다 하지만 당 비서직도 무시 못 할 요직이라는 점에서 최룡해는 아직 김정인에게 있어서 곁에 두어야 할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갖은 추측을 내놓으면서 확대해석에 열을 올리는 국내와 달리 미국은 이 점을 꿰뚫고 있는 있다.
美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국제관계국장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황병서를 2인자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황 전 비서는 2010년 초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의 경호 아래 방미(訪美)한 바 있다.
그러나 최룡해는 안심할 수만은 없다. 그가 조금이라도 자각(自覺)이 있다면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2인자 자리를 꿰찼던 인물들의 말로(末路)는 대부분 어두웠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박헌영이 있다. 북한 설립 초기 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에서 강한 입김을 발휘했던 그는 결국 간첩행위 등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1953년 김일성에게 처형당했다.

<故 황장엽 前 노동당 비서>
가깝게는 황 전 비서가 있다.
북한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창시할 정도로(물론 김일성식 주체사상과는 다르다)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故人은 결국 97년 한국으로의 망명을 택했다. 故人 스스로의 신념이 가장 컸지만 북한 내부 분위기가 그의 '중국식 개혁개방' 주장을 받아들일 정도로 故人에게 우호적이었다면 굳이 망명할 이유는 없었다.
김정일 시대 조직지도부 등지에서 핵심 권력을 누렸던 이제강 등도 마찬가지다. 80이 넘은 고령에 이르른 그들을 김정일은 교통사고로 위장해 2010년 6월 끝내 숙청했다.
권력 핵심인물이 홀로 도보로 평양 시내를 걷다가 교통여경이 지키고 있는 차도를 무단횡단하던 중 가뜩이나 많지도 않은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장성택도 같은 케이스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처조카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박헌영이나 황 전 비서나, 사상을 떠나 능력만을 본다면, 모두 한 시대를 이끈 능력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조차도 냉혹한 권력투쟁 앞에서 숙청의 칼날을 비껴가지 못했다. 하물며 오로지 항일(抗日)빨치산으로 알려진 친부 최현의 후광에만 의지해 승승장구한 무능한 최룡해가 편한 말년을 바랄 수는 없다.
정치범수용소를 운용하고 대남(對南)도발을 일삼는 등 인성을 잃어버린 김정은에게 있어서 '동반자'란 없다. 오로지 '이용할 사람'과 '이용가치가 사라진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어쩌면 최룡해에게 당 비서 좌천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총정치국장직과 달리 당 비서는 해외 출장의 기회가 비교적 폭넓게 주어진다. 당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중국으로 갈 수도 있고 불법물자 밀수를 위해 아프리카나 쿠바를 방문할 수도 있다.

<1997년 4월 김포공항에 발을 내딛으며 감격의 만세를 외치고 있는 故 황장엽 前 노동당 비서(왼쪽). 故人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나는 민족 앞에 큰 죄를 지었다"고 토로했다. 이후 2010년 10월 자택에서 별세할 때까지 자유민주 통일을 위해 일하며 진정한 삶을 누렸다. 최룡해에게도 이 같은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수 있다>
황 전 비서도 중국 출장 당시 망명을 요청해 한국으로 온 바 있다.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공산당 수뇌부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황 전 비서를 북송(北送)시키는 대신 제3국 추방 형식으로 한국행을 허용했다.
한중(韓中) 양 국의 협력관계가 높아지는 지금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최룡해의 한국행을 허용할 가능성은 97년 당시보다 높다면 높지 낮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가족을 버리고 홀로 오는 것이 거리낀다면 밤중에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면 된다.
중간급 간부들도 "당 사업하러 중국 간다" 한 마디에 중국으로 탈북하고 있다. 물론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국경경비대가 등 뒤에서 실탄을 조준사격할 수도 있지만, 그간 자신이 저지른 죄의 업보(業報)라고 생각하고, 죽을 힘을 다해 건너면 된다.
고전(古傳)인 사기(史記)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지나친 권력욕은 화(禍)를 부른다. 물러날 때가 되면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이 최룡해에게는 물러날 시기이자, 목숨을 부지할 기회이고, 나아가 진정한 삶을 얻을 시점이다.
[겨레얼통일연대 NK사이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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