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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노인 치매 속에도 남아 있는 '기억의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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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탈북민 정착 역사가 30년을 넘어가면서, 탈북민 사회 또한 초고령화의 길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혜택은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며, 상당수 탈북노인들은 노인요양시설이나 방문요양서비스를 통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다. 특히 탈북민의 75% 이상이 여성으로, 그중 많은 이들이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로 활동하며 탈북노인들의 노후 돌봄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탈북여성 요양보호사들과의 인터뷰에서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다. 치매로 인해 자신의 생일과 자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탈북노인들이, 북한의 독재체제를 상징하는 김일성·김정일의 생일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10년째 요양보호사로 근무 중인 탈북민 정 모 씨는 치매 환자인 탈북 어르신 세 분을 돌보면서 공통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그녀가 어르신들에게 어머니, 생일이 언제세요?”라고 물으면, 두 명은 주저 없이 “4 15이라고 답했고, 또 한 명은 “2 16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실제 생일은 기억하지 못했다.

4 15일은 북한에서 태양절로 불리는 김일성 생일이며, 2 16일은 광명성절이라 불리는 김정일 생일이다. 북한에서 이 두 날짜는 주민들에게 자신의 생일보다 더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는 날로 주입되며, 매년 전국적으로 대규모 행사가 열리고, 모든 교육·문화 시스템이 이 날짜들을 기념하는 데 집중된다.

정 씨는 자기 자식의 이름은 잊어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름과 생일은 절대 잊지 않는다. 그만큼 어릴 적부터 뼛속 깊이 주입된 세뇌교육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북한 수령신격화교육, 뇌 깊숙이 남는 기억의 감옥

북한의 세뇌교육은 단순한 정치교육을 넘어, 종교적 숭배에 가까운 수령신격화교육으로 특징지어진다. 유치원부터 직장, 군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과 사회생활의 중심에는 위대한 수령에 대한 충성심이 자리한다.

매일 아침마다 진행되는 김일성 혁명역사 학습’,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는 수령님 은혜교육,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의무적으로 암기하고 외우는 혁명가요교시는 북한 주민들의 잠재의식 속 깊숙이 각인된다.

특히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개인의 운명과 생계를 좌우하는 충성심의 시험대이기도 했다. 이날을 기념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면 반체제자로 의심받고, 심지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

이런 사회적 압박과 공포 속에서 주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내 생일보다 더 중요한 날은 수령의 생일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내면화하게 된다. 그 결과, 오랜 세월이 지나 치매에 걸린 뒤에도 수령의 이름과 생일만큼은 뇌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웃을 수 없는 비극, 세뇌의 후유증

탈북민 요양보호사들은 이를 웃지 못할 비극이라 부른다. 치매는 인간이 가장 기본적인 기억조차 서서히 지워버린다. 그런데 북한에서의 세뇌교육은 그 마지막 기억마저도 수령 숭배로 남겨버린다.

요양보호사 김씨는 이건 단순한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 체제가 인간의 정신 깊숙이 남긴 상처라고 말했다.

이 사례는 단순히 개인적인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강력한 체제 세뇌와 공포정치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단면이다.

탈북민 사회의 과제: 세뇌 해체와 기억 회복

이제 탈북민 사회는 고령화와 함께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단순한 생계 지원과 의료·복지 서비스뿐 아니라, 오랜 세뇌의 상처를 치유하고 왜곡된 기억을 회복하는 심리·정신적 지원이 절실하다.

북한의 독재체제가 만들어낸 기억의 감옥을 해체하지 않는 한, 탈북민들은 자유사회에 살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탈북민 요양보호사들의 증언은 북한의 세뇌교육이 단순한 사상교육이 아니라, 인간의 뇌를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심리적 폭력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이 비극은 더 이상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존엄을 회복시키기 위해 왜 행동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겨레얼통일연대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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