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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탈북민의 자부심을 빼앗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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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피해자가족이 가족의 사진을 들고 북한독재정권을 단죄하고 있다-겨레얼통일연대
 

이름을 바꾸는 권력은 역사를 지울 수 있다고 착각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가장 먼저 보장해야 할 권리는 존엄과 정체성이다.

그러나 최근 통일부가 탈북민을 ‘북향민’으로 호칭 변경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언어 행정이 아니다. 이는 한 집단이 걸어온 역사와 투쟁의 의미를 국가 권력의 판단으로 재편하려는 시도, 다시 말해 정체성에 대한 폭력에 가깝다.


‘탈북민’이라는 명칭은 결코 중립적인 기술어가 아니다.

그 안에는 북한의 독재 체제에 대한 거부, 자발적 탈출, 자유에 대한 선택, 그리고 목숨을 건 결단이라는 분명한 정치적·도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이름은 국가가 시혜적으로 부여한 호칭이 아니라, 탈북민 개인이 스스로 쟁취한 정체성이다.

그럼에도 통일부는 ‘북향민’이라는 모호하고 탈정치화된 용어를 앞세워 탈북민의 존재를 체제 비판의 주체에서 관리 대상의 주민 집단으로 격하시킨다. 이는 포용이 아니다. 비가시화이며, 배려가 아니라 무력화다.


물론 탈북민 사회 내부에는 다양한 자기 호칭이 존재한다.

억양이 부드럽다는 이유로 ‘북향민’을 선호하는 이도 있고, 자유를 찾았다는 의미에서 ‘자유민’, 통일을 먼저 이룬 존재라는 의미에서 ‘통일민’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호칭은 어디까지나 ‘탈북’이라는 본질적 정체성 위에 성립한 확장된 개성일 뿐, 탈북민이라는 근간을 부정하지 않는다.


탈북민 사회의 본질은 분명하다.

북한의 독재와 조직적인 인권유린에 항거하여 스스로 탈출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 본질을 제거한 채 부드러운 억양의 개성만 남긴다면, 남는 것은 껍데기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호칭 변경이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보다 독재 정권과의 관계 관리에 집착해 온 통일부의 정치적 태도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인권 문제를 ‘자극적인 사안’으로 치부하고,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을 부담스러워하며, 노골적인 종북 성향을 드러내 온 통일부 장관의 정치적 성향과 정확히 겹쳐 이루어지는 명칭 변경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탈북민은 통일부가 만들어낸 행정적 분류가 아니다.

탈북민은 북한의 국가폭력과 인권유린을 온몸으로 거부한 실존의 증언자다.

그 이름은 정부가 허락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스스로 쟁취한 정체성이다.


이러한 시도는 필연적으로 질문을 낳는다.

왜 하필 지금인가.

왜 탈북민의 투쟁성과 정치적 상징성을 제거하려 하는가.

왜 독재에 맞선 개인의 결단이 단지 ‘방향을 바꾼 주민’ 정도로 축소돼야 하는가.

탈북민을 독재와의 투쟁의 상징으로 여기며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호칭 변경은 행정 조정이 아니다. 그것은 존엄에 대한 부정이며, 역사에 대한 모욕이다. 국가 권력이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자부심을 재단할 권리는 없다.


이름은 단어가 아니다.

이름은 역사이고, 선언이며, 책임이다.

탈북민의 이름을 바꾸려면, 먼저 북한의 독재 체제를 바꾸라.

탈북민의 정체성을 희석시키려면, 그들이 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는지부터 부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된다.

국가는 탈북민의 자부심을 관리할 대상이 아니라, 존중해야 할 역사로 대해야 한다.

탈북민의 이름을 빼앗는 순간, 국가는 스스로 자유와 인권의 편에 서 있음을 부정하게 된다.

탈북민의 자부심을 빼앗지 말라.

이것은 호칭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가를 가르는 시험대다.


겨레얼통일연대 대표 장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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