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가치-인권피해 탈북여성 수기3

본문
5장
기적처럼 돌아온 날들
그날은 어느 평범한 아침과 같았다.
하지만 나에겐 모든 것이 달랐다.
수백 명이 강물처럼 흘러들어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던 그 감옥에서,
나는, 홀로 살아 나왔다.
수감된 지3년.
부서진 몸, 뒤틀린 마음, 끝없이 반복된 조사와 폭력의 시간 끝에
사건은 기각되었다.
나는‘정치범’이라는 멍에에서 풀려났다.
나는 다시 걷고, 다시 말하고, 다시 살아야 했다.
처음 햇빛을 마주한 날,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되뇌었다.
“내가 살았구나.
나는 아직 이 세상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구나.”
집으로 향하는 길은 길고도 짧았다.
집 앞에 다다르자
낯선 듯 익숙한 목소리가,
기다림을 닮은 숨결이 나를 맞이했다.
문이 열렸다.
많이도 늙으신 어머니가,
형제들이,
그리고…
어느덧 여섯 살이 되어버린 아들이 내게 달려왔다.
“엄마!”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그 작고 여린 품이 나를 감쌌고,
나는 마치 새로 태어난 듯, 울었다.
어머니는 오열하셨고,
형제들은 말없이 등을 다독였다.
그날, 나는 자유를 만졌다.
자유는 바로 이 순간이었다.
숨을 허락받는 것,
사랑하는 이를 내 품에 안을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것.
그러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분,
내가 가장 보고 싶던 한 사람.
아들은 내 귀에 속삭였다.
“엄마… 할아버지, 돌아가셨어요.”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이 꺼지고,
기적처럼 열렸던 문이 다시 닫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오기 열흘 전, 세상을 떠나셨다.
내 사진을 벽에 걸고,
매일 올려다보며“내 딸은 죽지 않았어”라며 버티셨다는 아버지.
그분은 결국, 나의 손을 다시 잡지 못하고
그 한을 안고 가셨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돌아왔더라면.
내가 쉽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그리움은 회한이 되었고,
회한은 다짐이 되었다.
이제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어떤 고통도, 어떤 싸움도 끝까지 견뎌내겠다고.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잃은 빈손이지만,
내게는 자유가 있었고, 아들이 있었고,
다시는 쓰러지지 않겠다는 용기가 있었다.
6장
상봉의 눈물, 그리고 다시 떠나다
기적처럼 돌아왔지만, 삶은 다시 지옥이었다.
나는 그토록 그리던 고향집 문을 열었지만,
그 안의 공기는 변한 것이 없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몸이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또 다른 감옥이었다.
나는 정직하게 살고 싶었다.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아들과 어머니 앞에서 떳떳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장사는 돈이 아니라 권력에 기대야 굴러가는 구조였다.
약초를 팔기 위해 시간 맞춰 움직이고,
단속을 피하고, 뇌물을 건네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감옥에서 죽도록 맞으며,
굶으며, 울면서 진실과 정의를 지켜낸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뇌물로 하루를 벌고
비굴하게 웃으며 단속을 피하는 삶에 적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정직한 삶을 살기엔, 이 땅은 너무 불의했다.
나는 또다시 무너졌다.
국가는 내게‘살 수 있는 길’을 허락하지 않았고,
사회는 나에게‘다시 죄인이 되라’고 속삭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떠나야만 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이 땅에서 더는 살 수 없습니다.
자유가 없는 땅에서,
진실이 짓밟히는 곳에서,
저는 제 아들을 지킬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한참을 침묵하시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아들의 손을 꼭 쥐고 집을 나섰다.
또다시 떠나는 길.
목숨을 걸고 탈출했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그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자유란, 말로만 듣던 개념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숨결이며,
존재로 증명하는 권리라는 것을.
북한에서의‘자유’는 허울이었고,
나는 이제야 진짜 자유의 땅에 발을 디뎠다.
감옥 안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내게 속삭였던 말이 떠올랐다.
“조선이란 나라는, 걸어다니는 감옥이야.”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 감옥을 넘어온 사람으로서
진짜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에필로그
자유는 나의 이름이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생존의 본질이라는 것을.
내게 자유란 단지‘구속받지 않음’이 아니었다.
숨을 쉴 수 있는 권리, 말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권리였다.
나는 감옥에서, 철창 안에서,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그것을 배웠다.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 속에서
나는 살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 느꼈다.
그 마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짓밟힐 수 없는
내 안의 불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고 돌아왔다.
아버지를, 세월을, 이름을.
그러나 나는 다시 얻었다.
자유를, 나를, 그리고 내 아들 앞에 당당할 수 있는‘존재’로서의 나를.
북한에서의 나는
누군가의 딸이었고, 아내였고, 어머니였지만
한 번도‘나’로 살지 못했다.
이제 나는 안다.
자유를 가진 나만이
내 아들의 미래를 열 수 있고,
내 어머니를 지킬 수 있으며,
내 이름을 스스로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의 사람이다.
나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이 땅에 온 나는 그 증인이다.
나는 이제,
이 자유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한다.
지옥을 지나온 사람이기에
나는 누구보다 밝게 빛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자유는 언젠가 그 땅에도,
조국 북한에도,
걸어다니는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도달할 것이라는 것을.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쓰고, 말하고, 증언하겠다.
자유는 나의 이름이니까.
김채연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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